장안 루빠 올레올레
휴가 때 한국에 다녀올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인도네시아 학생들에게 꺼내면 어김없이 학생들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장안 루빠 올레올레, 선생님’.
한국어로 치면,
‘여행 기념품/특산품 잊지 말고
사 오세요’ 정도가 되겠는데
인도네시아의 이 올레올레(oleh-oleh)는
그냥 기념품의 의미를 넘어서
여행한 곳의 유명한 지역 특산물이나 그 지역에서 나는 작은 주전부리 종류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보고하는 개념으로
모두에게 돌리는 일종의 성의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처음 족자카르타의 가자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그 곳 강사로 있던 한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를 다녀오신 뒤,
한국 슈퍼에서 파는 도시락 김을
학과장님을 비롯하여 학과 선생님들 모두에게 하나씩 돌리는 것을 보고
살짝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우리네
정서로 비춰 봤을 때, 여행선물이라는 것이
감사했던 한 두 분께 값나가는 선물을 드리거나
혹은 아예
그런 것은 신경 안 쓰거나 하는 일이 더 흔한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남은 이들을
생각하며 먼 곳에서부터 선물을 챙겨오는 것이 관습처럼 여겨지고,
선물을 받는 이들도 그것의 값어치를
떠나
멀리서 자신을 위해 선물을 챙겨왔다는 사실을 더 크게 여기고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한국에 휴가를 갈 때,
가족들의 선물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습관처럼 공항 면세점에서 화장품이나 주류
같은 것들을 사서
의례적으로 드리는 일이 더 잦았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희귀한 특산물이나 독특한
먹거리를 챙겨 가서
가족들에게 한 번 쯤 선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딴에는
면세점에서 산 것들이
더 값나가고 깔끔하고 좋은 것이니까 하는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학생들, 친구들, 선생님들은 달랐다.
어디 가까운 도시라도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돌아올 때면,
그 지역에서만 난다는 젤리, 튀김,
말린 과일, 초콜릿, 수공예품, 엽서, 천가방 등을
기어코 내게 선물해 주며
그간의 여정을 한 보따리씩
이야기로 풀어내곤 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워낙 나라가 크고 지역마다 기후, 특색이 다 달라서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유명한 것들이 많다며
여행지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도 함께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몇 년 살아본 나는
족자카르타에 박피아라는 빵이 그리 유명하고,
발리에 우유파이가 인기가 좋으며,
스마랑 지역에 반등이라는 가공
생선이 맛있고,
메단의 꾸에 두리안과
람뿡의 커피가 알아준다는 사실을
이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친구들의
넘쳐나는 성의와 소소한 재미
그리고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한국을 다녀온 나는
학교 친구들에게 맛 보여줄 인삼차와 홍삼캔디,
학생들에게
나눠줄 한복 인형 휴대폰 줄과
K-POP 가수들이 잔뜩 실린 엽서들을 고이고이 챙겨왔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한국의 우리 가족들 안부와
여러 소식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봐 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한국인은 선물에 인색하거나
선물은 반드시 값나가고 좋은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젤리
한 박스, 끄루뿍 한 봉지도 서로 나눠 먹으며
마음을 나누고 따뜻하게 웃을 줄 안다.
선물의 가치는 가격이 아닌
정성이라는 이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