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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5일 일요일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언어 현실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언어 현실


이제 기말 과제 두 편만 작성하면 
인도네시아 대학교도 기나긴 방학에 접어든다. 
지난 두 학기를 보내면서 예비 언어 전문가인 동기들과 
학문에 열정이 남다른 교수님들 사이에서 
언어, 문화에 관련된 지식을 공부하면서
이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꼈다.
 그러나 이토록 다채로운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인도네시아가 
내외부적 여러 요인들로 인해 
자신들의 것을 지키지 못하고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기감과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인구 24천만의 인도네시아는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공식어로 채택하고 있지만
다양한 종족들이 사용하는 지방어는 
742(Lewis, 2009; SIL International Indonesia Branch, 2006)에 달한다고 한다
출처 : Language diversity, change and endangerment in Indonesia
(Multamia RMT Lauder and Allan F Lauder
Linguistics Department, Humanities Faculty, Universitas Indonesia)

자바어(7,520만 명), 
순다어(2,700만 명), 
말레이어(2,000만 명), 
마두라어(1,300만 명), 
미낭카바우어(650만 명), 
바탁어(520만 명), 
부기어(400만 명), 
발리어(380만 명), 
아체어(300만 명), 
사삭어(210만 명), 
마카사르어(160만 명),
람풍어(150만 명), 
레장어(100만 명)
이들 언어는 언어 사용자가 백만 명 이상인 
대표 지방 언어 13가지다(A. F. Lauder, 2003). 
그리고 나머지 729개의 언어들은 
사용 인구가 수백 혹은 수천 명에 불과하거나 
더 적게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 언어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소수종족 언어들은 현재 언어 사용자가 사망하면 
언어도 함께 소멸되는 위기에 처해있다
대부분의 소수 종족어들은 문자도 없이 
구어 형태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인구가 많은 자바섬에는 1 2천만 명 이상의 언어 사용자들이 
2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반해
인구 2백만 명의 파푸아섬에는 
271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하니
어떤 희귀 언어는 사용자가 두 명밖에 되지 않아 
그 할아버지들 돌아가실까 걱정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유네스코의 세계 언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언어들 중 약 30퍼센트만이 
세대간의 전달이 온전히 이뤄지고 있으며
나머지 70퍼센트의 언어들은 힘있는 언어에 밀리거나
거주자들의 이주, 정부의 잘못된 정책
소수민족 언어를 바라보는 부정적 태도, 사용자들의 질병이나 전쟁의 발발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점차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상황도 마찬가지. 
대중매체들 대부분이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사용하고
이보다 더 심하게는 영어가 더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소수 종족어들은 점차 그 지역의 학교 커리큘럼에서도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라 
지방어와 고유문화가 위협받고 있다.

좋은 직업을 구하거나 결혼을 위해서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사용하는 것이 소수종족 사이에서 당연하게 여겨지고
언어 접촉이나 거주 이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소수 종족을 바라보는 다수의 태도나 교육제도 안에서 
지방어를 지지하는 정책 등의 변화를 통해서 
지방어의 계승이 꾸준히 이어져 
다채로운 언어와 문화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인도네시아를 오랫동안 경험하고 싶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빠당'으로 적을까? '파당'으로 적을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인도네시아어 표기 원칙

나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특히 Padang 음식을 몹시 좋아한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미낭카바우족의 전통 가옥 형태를 한 Padang 레스토랑은 
자꾸만 내 발길을 이끈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널리 인기를 끌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 지역의 음식은 
한 번 맛보면 중독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CNN 방송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를 기록한 것이 
바로 른당이라는 매콤한 고기요리인데
이는 대표적 Padang 음식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 음식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미국에 이어 페이스북 국가별 사용자 
2위에 해당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Padang 음식을 한글로 표기할 때
빠당이라고 해야 현지 발음에 더 가깝고
매콤하고 자극적인 빠당 음식의 맛을 
제대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파당음식이라고 표기하면 
왠지 모르게 싱거울 것 같은 느낌이랄까? ㅋㅋㅋ

인도네시아 학생들과 작문을 할 때도 
항상 학생들이 의아해 하는 부분이 바로 
인도네시아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된소리가 아닌 거센소리로 적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대학교는 왜 데뽁이 아니라 데폭에 있느냐고 묻는다
빨렘방이 아니라 팔렘방’(Palembang)이라고 적고 나면
왠지 수마트라가 아니라 어디 팔레스타인 옆에 
붙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 맛있고 쫄깃쫄깃한 음뻭음뻭의 맛을 
음펙음펙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제14항의 내용을 보면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도대체 왜 빠당음식이 더 현지음에 가까운데
된소리를 쓰지 않도록 한 것일까

우리말의 자음은 예사소리(, , ), 
거센소리(, , ), 된소리(, , ) 세 갈래의 대립을 갖지만
인도네시아어를 비롯한 많은 외국어 자음은
무성음( k, t, p )과 유성음( g, d, b ) 두 갈래 대립만을 갖는다
우리는 , , 을 각각 다른 소리로 구분하지만
영어에서는 ‘big’‘pig’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가지 구분만 있을 뿐
pig피그라고 발음하든 삐그라고 발음하든 같은 [p]로 인식한다

반대로 우리는 유성음과 무성음 대립이 없으므로
고기라는 단어가 두 개의 같은 자음 으로 인식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코기( kogi )’처럼
무성음 k와 유성음 g로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 우리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외국어를 들을 때
이 무성음( k, t, p )들이 언어에 따라
영어나 독일어처럼 우리말의 거센소리에 가깝게 들리기도 하고,
프랑스어나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처럼
된소리에 가깝게 들리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언어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외국어의 p, t, k 소리를
강한 느낌을 주는 된소리(, , )가 아닌
거센소리(, , )로만 적도록 제한한 것이다

같은 무성음 [p]두 가지 다 허용하면
오히려 표기의 혼란이 가중이 될까 우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어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유성음, 무성음 두 갈래 대립뿐이므로
무성음은 거센소리 표기가 원칙적으로 맞는 것이다.    

학생의 이름을 한글로 쓰는 방법을 처음 가르쳐 줄때
Putri는 푸트리로, Yetti는 예티로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면
학생들은 매우 의아해 한다
하지만,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그러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 역시 한글 맞춤법의 일부이고
외래어·외국어의 한글 표기를 통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가능한 한 준수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가도 
인도네시아어의 실제 발음과 너무나 동떨어진 외래어 표기법에 
실소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현실발음을 표기에 반영하라는 주장에 따라 
잘 통용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하루 아침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로 표준어가 바뀐 것도 머리 아픈 일이고
푸틴대통령이 하루 아침에 뿌찐으로 불리는 것도 복잡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감칠맛 나게 들리는 빠당음식이 
약간은 퍼석퍼석하고 맛없게 들리는 파당음식이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