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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4일 일요일

인도네시아의 전통 옷 바띡 이야기

인도네시아의 전통 옷 바띡 이야기

한국에 자랑스런 한복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전통옷 바띡이 있다.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을 할 만큼 인도네시아인들의 전통옷 사랑은 뜨겁다.
모든 관공소나 기업들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그 이상
(현재 내가 수업하고 있는 가자마다 대학교UGM에서는 매주 금요일이 바띡의 날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바띡을 입고 출근하여 그 날 하루를 보낸다.

며칠 전 신문 기사에서 명성 있는 신* 호텔에서 한복을 이유로 입장 금지 복장으로 규정했다는 어이없는 기사를 읽고 할 말을 잃었던 적이 있다. 한복을 트레이닝복과 동급으로 취급하다니... 부피가 너무 커서 다른 고객에게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나...?!?!
우리 나라의 전통문화를 업신 여기고, 부정하는 이런 태도는 국제적 망신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찌됐든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옷 바띡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볼까 한다.

점을 그리다라는 뜻의 바띡(Batik)
바띡은 인도네시아 대부분 지방에서 많이 만들어지는데 특히 자바섬의 바띡이 유명하다
원래 바띡은 왕족들이 애용한 옷감으로, 섬세하고 문양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수공예 과정이 복잡하여 옷감 하나를 완성하는데 보통 1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복잡한 무늬의 경우 길게는 3~4개월까지도 걸린다고 한다.
요즘은 손으로 직접 그리는 바띡 외에 스탬프로 찍어내는 저렴한 바띡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가내수공업으로 이루어지는 바띡 외에도 Batik keris, mirota Batik 등의 다양한 바띡 브랜드가 많이 있다. 장인이 직접 만든 고급스러운 바띡이 우리 돈 100만원 가까이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비싼 가격.
결혼식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이벤트를 앞두고는 좋은 바띡천을 사서 직접 재단사에게 맡겨서 옷을 재단해 입기도 한다.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 바띡은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생활에 편하고 친숙하기 그지 없는 일상복의 개념이다. 대통령도 항상 공식 행사때 바띡차림으로 연설을 하고, 외국인이 국빈으로 방문해도 바띡을 선물해서 함께 입고 자리하기도 한다. 평소에 우리 옷 한복은 일년에 한 번도 입을까 말까한 상황에서 아직까지 전통의복이 자연스럽게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이번에 Rembang이라는 바띡으로 유명한 도시를 방문해서 전통적인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마을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직접 밀랍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고, 염색을 하고, 삶고, 말리고 그 과정을 여러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바띡 천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살펴보고 왔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게도 귀한 경험이 되었는데 외국인인 나에게는 두 말할 나위 없이 특별한 이벤트였다.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바띡을 파는 집이라는 뜻


바띡 제조 과정이 간략하게 그림으로 나타내져 있었다

더운 염료가 담긴 화로 옆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분들
나는 실내에 들어서기만 해도 땀이 쭉쭉 났는데
하루종일 작업하는 이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좁은 작업장에서 동네 아낙들이 모여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
밀랍을 입히고, 염색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삶고 말리고...

옛날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도 직접 치자물, 풀물을 들인 천으로 옷을 지어내곤 하셨겠지

간단히 말해서 바띡은 밀납염색 방법을 이용해 만든 천.
밀납을 입힌 부분은 염료가 침투되지 못한다. 밀납을 입히지 않은 부분을 먼저 염색하고, 다시 밀납을 뜨거운 물에 삶아 녹여내고, 다른 부분에 또 밀납을 입혀 다른 색을 입히고...
이렇게 복잡한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어야 하나의 천이 완성된다.

올해가 토끼의 해렸다!

밀납을 입혀 번들번들한 천의 모습

한 아낙의 입가에서 발견한 미소.
작업장의 아주머니들 대부분이 피곤함과 매캐한 염료 때문에 표정이 어두웠는데,
저 분만은 진심으로 일을 즐기면서 하고 계신듯 했다.
진정한 장인이야말로 저런 분이 아닐까?

염색공정 모습
밀납이 칠해지지 않은 부분에 염료를 입히는 과정.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염색 작업장을 보면서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여주인공이 2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옷감을 만드는 시골로 피난을 가 고된 노동을 하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는 거칠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혹시 임이 나를 보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모습까지도...
인도네시아의 뜨거운 태양에 검게 그을린 내 모습을 보고
예전 내 하얀 피부를 좋아했던 나의 님도 실망하실 건가요?ㅎㅎ

염색 작업은 힘 센 남정네들이!

염색을 마치고 깨끗이 씻은 천을 햇빛에 말리는 모습

완성되어 판매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문양의 천들.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위의 제품들은 우리 돈으로 20만원 정도.
작업하시는 분들의 한 달 월급보다도 많은 액수이다.ㅠㅠ

화려한 무늬가 얼마나 눈길을 사로잡던지...
 


내가 구입한 바띡.
 꽃과 공작새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것은 밀납염색이 아니라 교힐(홀치기)법이라는 것으로
천을 다른 끈으로 꽁꽁묶어 염료가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
앳되어 보이는 소녀가 숙달된 솜씨로 실을 동여매고 있었다.

이 곳 작업장은 매우 쾌적한 편이었다.

나일론 끈으로 천을 묶어 놓은 모습

머플러로 활용해도 좋을법한 옷감들
한국 갈 때 선물로 꼭 사가야겠다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백 번 찾아봐도 알지 못할 것들을 이틀 동안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배운 덕분에 염료기법이나 과정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직접 내 손으로 만든 바띡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바띡이지만, 점차 바띡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옷 이외에도 침구류나 장식품 등에도 응용되는 모습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탓에 처음에 바띡에 대해 가졌던 거부감이 이제는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Arisan Ibu-ibu dosen FIB UGM (인문대 여교수님들의 여행기)

UGM 인문대 여교수님들의 1박 2일 여행기


부활절 휴일 겸
Kartini 여사의 기념일 겸 해서
가자마다 대학교의 인문대 여자 교수들끼리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족자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Rembang이라는 작은 도시로
바띡 수공예 작업장과 Ibu Kartini의 박물관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여행가기 전날까지도 수라이 학과장님께서는 여자들끼리만 여행간다고 엄청 부러워하셨다.



인문대 학장님께서 지원해 주신 버스
아침 6시 30분부터 인문대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여행 가는 날 아침도 원인 모를 알러지 때문에 고생했다. ㅠㅠ

자바어 교수님께서 정성스레 준비해 오신 아침식사
빵과 귤 등 간단한 스낵들이 들어있었다.

Rembang 가는 길에 있는 보성 차밭을 연상케 하는 예쁜 차 농장.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농장을 운영하는 커피숍에 들러서
직접 수확한 향긋한 차와 커피를 맛 보고, 기념품 커피도 사 왔다.

22일 점심식사 @Demak의 asam-asam식당

버스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

차창 밖으로는 사탕수수 농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인 경치들.

소금밭이다.
인도양과 인접한 자바섬 남쪽의 족자를 출발하여
자바섬 북쪽에 위치한 스마랑을 지나는 길에 펼쳐진 소금밭.
자바해가 기른 뽀얀 소금들.

항구 도시 스마랑과 인근의 작은 도시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
중국인들과 무역업이 일찍부터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은 음식도 가옥들도 사람들도 중국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배들과 항구를 볼 수 있었다.

여행 중간에 모스크에 들러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저녁 식사를 위해 들른 씨푸드 레스토랑
음식도 맛있었고, 유쾌한 대화도 오갔던 저녁식사.
내부에는 멋진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 전 한 컷.



@Resto Gallery

저녁 식사 중

아담하고 깨끗했던 Hotel Ratina
Museum kartini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아얌 바까르와 뗌뻬가 제공된 아침식사가 정말 맛있었다.

호텔 외부 모습



Ningrum교수님의 어머님 댁에 잠깐 들러 정성스럽게 준비된 다과를 대접받았다.
Lotek 도시락까지 싸 주셔서 우린 모두 감동 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족자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커피숍에서
차와 스낵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도 해결했다.


 족자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모처럼 여행에 몸은 피곤했지만, 인도네시아를 배우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무엇보다 다른 교수님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정말 보람있었다. 1박 2일 동안 내내 버스 안에서 함께 대화 나눴던 라띠 선생님의 한국 유학 이야기, 이슬람 이야기, 현재 박사 논문 주제인 노동자들 이야기, 그 밖의 인도네시아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은 책에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정보였다.

 버스 안에서 젊은 여교수들이 곰 세마리를 즐겁게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또 한 번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하고, 또 한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고, 엄격하고 무서워 보이던 인문대 학장님께서 에어콘 바람에 추위를 타는 내게 스카프를 건네주실 때는 어머니의 정을 느끼기도 했다. ㅎㅎ

한국어과 다른 교수님들이 이번 여행에 갑자기 불참하신다고 하셨을때, 나도 가지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이번 여행에 참가한 유일한 외국인 네이티브 강사로서 정말 많이 배우고 즐겁게 여행했다.  월요일에 캠퍼스에 출근하면 이번 여행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한 보따리 풀어놓을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