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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9일 목요일

학생들의 졸업 논문과 시험

학생들의 졸업 논문과 시험

UGM의 정규 졸업식은 일 년에 한 차례지만,
부지런히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 논문 심사까지 마친 학생들을 위해
일 년에 네 차례나 졸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학기 중에도 그리고 방학에도
현지 선생님은 물론 우리 코이카 선생님들까지
학생들의 졸업 논문 지도로 늘 분주하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주제로 책 한 권 분량의 졸업 논문을 작성하는데
우리 한국어학과는 반드시 한국어로 초록과 본문 요약을 첨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다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위 논문은 지난 6월 졸업한 Fajar의 것으로
<영화 '님은 먼 곳에'를 통해 본 한국인의 유교적 생활방식>이란 주제의 논문이었다.
배우 수애 씨가 등장한 영화로 베트남 전쟁 중에 시어머니의 명령으로
파병간 남편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향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이 논문은 영화에 나타난 유교적 생활 방식을 분석한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군인으로서 나라의 부름에 따라 파병을 떠난 것은 군위신강에 해당하는 내용이고,
남편에게 공손하고, 남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까지 따라가는 행동은 부위부강,
그리고 시어머니를 지극히 모시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부위자강에 해당한다는 등의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문과정인 3년제 D3의 경우는 논문 표지 색이 흰색, 4년제 S1는 검정색이다.

Fajar의 논문 외에도
종결어미에 대한 다소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작성했던
한국말 잘 하는 Yeti의 논문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를 내세우는 자바인의 기질과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기질을 비교한 Uci의 논문도 기억에 남는다.

거의 한 학기 동안, 길게는 1년 이상 준비한 학생들의 논문에
조언을 하고, 함께 번역과 수정 작업을 한 지도 선생님의 서명이
제목 바로 뒷 페이지에 들어간다.
제본을 마치고 산뜻하게 완성된 논문을 들고 찾아와 
서명을 부탁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 대할 때면
마치 내가 졸업을 앞 둔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2008년에 개설된 4년제 한국어학과는 올 해 첫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지금은 신입생들이 한국어를 미리 공부해 오고 어느 정도 알고 오는 경우가 많지만
초창기에는 완전 초보 수준으로 입학하여 중급 상태로 졸업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한국어 논문 요약과 초록 부분에 대해 초고 작업을 할 때는
정말 내가 다시 논문을 쓰다시피 했던 기억이 난다.

학과 사무실 앞에는 넓고 투명한 책장에 학생들의 졸업 논문이 진열되어 있다.
재학생들은 선배들의 논문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학생들 모두가 정말 진지한 자세로 혼신을 기울여 반 년 이상 졸업 논문을 작성한다.
그리고 졸업 논문을 심사받는 시험날에는 멀리 시골에서 부모님이 오셔서
자녀를 응원하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만큼 졸업 논문이 이들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하나의 논문 완성을 위해 지도 교수님을 스무 번 이상 만나고 지도를 받는다.
그리고 혹여 부족한 점이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냉정하게 다시 돌려 보내는 현지 교수님들,
이것이 바로 인도네시아의 대학 문화였다.
점점 드래그+카피로 변질되어 가며 형식적인 관례로 전락하고 만
우리네 대학 논문을 떠올리며 입맛이 씁쓸해졌다.